원래는 음악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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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gYong


Posted on May 25, 2019, 4:54 p.m.


원래는 음악을 하고 싶었다. 지금은 그냥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아래아 한글 띄워놓고 문서작업이나 하고 있는 아저씨가 되었지만, 원래는 음악이 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음악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내가 일곱살 때쯤부터 피아노학원을 다니라고 했지만, 여자애들이나 다니는 학원에 왜 다녀야 하는건지 이해할 수 없어서 거절했다. 그랬던 내 마음이 바뀐건 초등학교 2학년 때 주말의 명화로 나왔던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영화 때문이었다. 그 영화 내용은 자고 일어나면 똑 같은 하루가 계속 반복되는 이상한 상황 속에서 남자 주인공이 좋아하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였다. 그 영화에서 여자는 남자주인공에게 자기 이상형은 악기를 다룰 줄 아는 남자라고 했고, 그 남자는 영화가 끝날 때쯤 무대에서 로큰롤 피아노를 치면서 여자의 호감을 산다. 아홉살 때의 나는 그 영화를 보고 피아노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게 재능이 없다는걸 철저히 경험했다.

다른 사람들은 체르니 30번까지 떼는데 얼마나 걸릴까? 대부분 바이엘부터 시작해서 체르니 100 그리고 30까지 떼는데 3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시작해서 중학교 1학년때까지, 그러니까 7년동안 했는데도 체르니 30번이 끝나지 않았다. 재능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왜 이렇게 오래 다녔냐고? 싫다고 하다가 엄마한테 졸라서 가기 시작했는데 포기하기 싫어서였다. 4학년 때쯤, 우리집이 이사를 간다고 했기에 이사가기 전까지만 다녀야지 했었는데, 그때쯤 경제위기가 왔고 건설사가 휘청휘청 하는 바람에 완공이 늦어졌다. 그래서 계속 배우게 되었다.

시기상 사춘기 때쯤, 라디오와 MTV에 빠졌다. 자정에 하는 유희열의 음악도시와 새벽 두시에 하는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을 듣느라 밤을 지샜고, 낮에는 MTV를 봤다. 이건 잡설이지만, 유희열과 신해철만 없었어도 내 키가 185는 충분히 넘었을거다. 어쨌든, 자미로콰이, 퀸, 에릭클랩튼, 패닉, 윤상, 유재하, 해리코닉주니어, AC/DC, 퍼프대디, 머라이어캐리, TLC, 퓨지스 같은 뮤지션들을 좋아했다. 음. 그런데 가수는 되고 싶지 않았고, 연주자도 되고 싶진 않았다. 학교에 가수 지망생인 친구들이 많았고, 나는 걔들과 비교하면 음치에 가까웠다. 그리고 피아노 못치는건 뭐 말할것도 없고.

그래도 작곡자, 프로듀서가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쯤 집에 있던 컴퓨터로 하우스음악 비슷한걸 만들었는데, 4살 어린 동생이 듣더니 몹시 비웃으며 날 놀리는 노래로 써먹었기 때문에 다시는 누구에게도 그런걸 들려주지 않았다.

그래도 대학에 가서는 밴드를 했다. 처음으로 남들이랑 같이 음악을 하는거라 자아가 없었고 뭐든 좋았다. 그때 했던 밴드는 주로 쌍팔년도 스타일의 건즈앤로지즈, 본조비 류의 음악을 했다. 하지만, 3년쯤 하고 나니 나도 자아가 생기기 시작했고, Funk나 R&B류의 밴드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재즈피아노학원에 갔다. 정말로 재미있었지만 재능이 있지는 않았다. 몇 개월 배우니까 선생님이 프리스타일 하는 걸 많이 가르쳐 주셨다. 분명히 선생님이 알려준대로 재즈스케일 안에서만 프리스타일을 했지만, 내가 하면 이상하게 흑인의 소울이 아닌 궁상각치우가 나왔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20대 후반에도 계속 음악이 좋았다. 전업으로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공부하면서 음악하는 루시드폴처럼, 버벌진트처럼, 페퍼톤스, 브로콜리 너마저처럼 그렇게 되고 싶었다. 그런 인기를 꿈꾼건 별로 아니었지만, 그런 식으로 살고 있는 내 주변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렇게 되고 싶었다. 그냥 그런 라이프 스타일을 원했다. 그래서 그런 친구들이 노는 곳에 많이 쫓아다녔다.

그런 친구들과 어울려서 술 마시고, 저 친구는 술마시다가 기타치면서 노래부르고, 또 다른 친구는 피아노치면서 노래부르고, 내 차례 오면 “나는 너네처럼 프로는 아니니까” 이러면서 어물쩍 부끄러운척 수줍게 하고, 그렇게 어울려서 노는게 재미있었다.

아. 맞다. 벽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했었다. 음악은 나에게 벽이 맞다. 내가 꿈꿨던 벽 너머에는 5명~10명 모인 클럽에서 여유로운 표정으로 웃기는 자작곡을 부르고 있는 내 모습이 있을 것이다. 10대 초반에는 당연히 저스틴 팀버레이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겠지만, 20대 중후반에는 그런 모습도 충분히 멋져 보였다. 인기보다 그냥 내가 만들고 싶은 가사와 노래로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음악이 차라리 멈춰 있는 벽이라면 좋겠다. 그냥 그 자리에 있을 테니까. 넘지는 못할지라도 기댈 수도 있고, 하지만 시간은 계속 흐르고 나도 나이를 먹는다.

이제는 그런 꿈을 꾸지 않는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마흔살 쯤에는 재즈트리오에 갑자기 껴서 연주해도 많이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지금은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다. 확실하게 나 자신과 약속한 것은 색소폰 배우는 아저씨들이나 직장인 밴드하는 사람처럼 자기 음악하는거 보러 오라고 주변 사람을 괴롭히거나, 자기 영상을 카톡으로 보여주면서 괴롭히는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 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냥 아무도 내 소리가 안 들리는 연습실, 작업실이 집에 있으면 좋겠다.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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