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영웅 개스톤에게
미녀와 야수를 보면서 어릴 때 느꼈던 것. 개스톤 같은 남자가 되고 싶다

by saintdragon2


Posted on May 11, 2019, 5:15 p.m.



안녕하세요 게스톤.

제가 미녀와 야수를 처음 봤을 때는 아마 초등학교 1~2학년때였던 것 같아요. 집에 비디오가 있어서 일주일에 한두번씩 엄청 여러번 보았죠.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미녀와 야수라는 이야기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게 되었어요.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이건 실패한 영웅 개스톤에 관한 이야기라는걸.

사실 모든 역사, 이야기, 신화는 승자 혹은 권력을 가진 자에 의해 쓰여집니다. 북한에서 장군님이 축지법을 쓰신다거나, 3살에 자동차를 운전했다거나 이런 이야기도 다 마찬가지잖아요? 수백명, 수천명을 처형하고 국민들을 기아로 죽게 만드는 사람도 북한 방송에서는 "국민들을 위해 애쓰시는 분"으로 묘사되잖아요.

역사, 이야기, 신화의 그런 속성을 10살도 안된 제가 알고 있는건 아니었어요. 미녀와 야수 이야기가 사실을 왜곡하고 뒤틀은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을요. 하지만, 그 뒤틀리고 왜곡된 이야기 속에서도 당신에 대한 사람들의 진술은 항상 일관되죠. 당신이 그 마을에서 가장 능력있고, 잘생기고, 열정적이면서도 순수한 남자라고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 하고 있어요.

비디오를 몇번 봤을 때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저는 이걸 당신의 사랑, 모험 이야기로 보기 시작했어요. 마을의 모든 여자들이 당신을 유혹해도, 당신은 눈길한번 주지 않았죠. 마을 사람들이 다 벨이 일은 안하고 소설만 보고 앉아있다고 욕할 때도 당신만은 벨을 감싸고 항상 도왔어요. 당신이 벨에게 고백할 때마다 벨은 당신에게 모멸감을 줬죠. 그래도 당신은 벨에게 소리 지르거나, 감금하거나, 밥상을 엎는 짓을 하진 않았어요. 당신은 그냥 동네 술집에 가서 그 큰 어깨를 축내리고 맥주만 마실 뿐이었죠.

그래도 당신에게는 진정한 친구가 있었죠. 그 친구분의 이름은 잘 기억이 안나요. 키가 작고 유머가 넘치는 분이었는데. 당신이 상심하고 있을 때, 그 친구가 Gaston 이라는 노래를 불러주잖아요. 저는 미녀와 야수에서 그 노래가 제일 좋아요.

모든 마을 남자들은 당신처럼 되고 싶어하고, 모든 여자들은 당신을 원한다는 노래에요. 사람들은 당신을 보면서 좋아하죠. 당신은 건강한 몸을 위해서 어릴 때부터 계란도 수십알씩 먹고, 사냥 연습도 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죠. 아버지가 무엇을 물려줬다거나, 집안 대대로 잘 살았다거나 하는게 아니에요. 다 자기 스스로 일구어낸 능력이고 지위였죠. 전 그때 알았어요. 저도 당신의 마을 사람들이 노래한 것처럼 나도 커서 Gaston 같은 남자가 되고 싶다고요. 열심히 살겠다고요.

저는 어차피 야수처럼 될 수는 없다는걸 열살 때도 알았어요. 아버지가 물려주신 성에 태어나서 자기 집안 영토의 시민들의 고혈을 빨아, 승리, 정준영처럼 밤마다 여자들을 불러놓고 클럽파티를 하는 야수처럼 사는건 불가능한 일이죠. 당신처럼 노력해서 자수성가하는 것만이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란걸 그때도 얼핏 알았던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야수라는 건 하나의 심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윗세대 분들이 반공 포스터 그릴때 북한 사람들을 뿔달리고 얼굴이 빨간 악마로 그렸던 것처럼요. 사람들이 그렇게 묘사했던거죠.

사람들이 왜 Gaston 당신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는지 모르겠어요. 사실 당신이 정말로 분노했을 때는 딱 한번밖에 없었어요. 마을의 미성년자 벨을 자기 집에 감금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죠. 미녀와 야수 이야기에는 당신이 폭력적이라고 묘사되지만, 사실 당신이 폭력을 쓴 적은 딱 한번 밖에 없었죠. 당신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요. 그리고 그것도 마을 사람들과 토론을 통해서 민주적으로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원래 영웅은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죠. 당신이라고 야수가 두렵지 않았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벌 떨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나설 수밖에 없었던거죠.

당신이 잘못한건 딱 하나밖에 없어요. 잘못된 여자를 사랑한것 하나죠. 어느날 슈퍼마리오를 하다가 생각했어요. 이렇게 쎄빠지게 점프하고 수도없이 노력해서 공주를 구하러 갔는데, 공주가 배관공보다는 왕국을 가진 쿠퍼가 더 좋다고 하면 얼마나 어이가 없을지.

벨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래요. gaston 같은 초라한 남자는 싫고, 어딘가에 더 멋진 삶이 있을 거라고. 그리고 금수저에게 감금되고 나서 스톡홀롬 증후군에 걸리죠. 돈과 권력밖에 모르는 여자를 선택했던건 잘 이해가 안돼요.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고 몇년 뒤 다른 영화에서 보게 되었어요. 멜깁슨이 나오는 브레이브하트라는 영화죠. 멜깁슨은 자신의 약혼녀를 결혼 전날 영주에게 바쳐야 했고, 분노하고 사람들과 봉기하죠. 그리고 제압당하고 사형을 당합니다. 목이 잘리는 그 순간에 멜깁슨은 하늘을 향해 외칩니다. "Freedom!!!"

우리나라가 아직 일본에게서 독립하지 못했다면 유관순, 안중근을 기억할 수 있을까요?

모든 사람이 다 당신을 악인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하지 마세요. 당신은 그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공동체를 사랑했던 영웅이었다는걸 기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녀와 야수를 처음본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당신같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성용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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