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배하는 프라임세포: 서울세포

미분류

by SungYong


Posted on March 30, 2019, 9:57 p.m.


아래 글은 문토에 가서 쓴 글이다.


나를 지배하는 프라임 세포

서울세포

아. 씨발.

항상 모든 글쓰기는 첫 문장이 어렵다고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포 이름을 붙이고 나니 3초만에 첫 문장이 생각났고, 1분 정도를 더 생각해봤지만, 이보다 더 좋은 첫 문구는 없다. 아. 씨발.

평생을 서울에서 살아왔다. 비록 강남이나 강북의 4대문 안에 살아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나는 스스로를 서울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평생을 살았다. 초등학교 때 3~4년 정도 서울근교에 살았던 적이 있지만, 그때도 전화번호는 02 였고, 집앞 횡단보도 하나 건너면 바로 서울이었다. 내가 서울사람처럼 생기지 않았어도 나는 서울 사람이 맞다.

서울에서 사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서울에 사는 부모를 만나는 천운을 가져야 서울에서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부모 덕으로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위기는 계속 찾아온다. 고등학교 시절, "인서울"을 목표로 최선을 다해야 연장할 수 있는 20대의 서울 생활이었다. 그 다음 위기는 군대였는데, 군대는 대학원을 가는 것으로 회피해냈다. 졸업을 하려고 보니 또 서울생활을 청산할 위기에 처하게 됐다. 적성과 성적의 적절한 교집합 지점을 찾아 전공을 선택했던 나의 전공은 "토목"이었고, 주변의 친구들은 다 두바이에서 100~200Km 떨어진 콘테이너 박스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하고 있거나, 한국에 남아있어도 깊은 산속에서 터널을 뚫는 현장에 파견나가 있곤 했다. 고등학교 때의 "인서울"이라는 인생목표는 이제 "탈토목"이라는 표어로 대체되었다.

대학원 졸업을 할 때 나는 전공지식보다 "인서울", "탈토목"이라는 표어를 더 가슴에 품고 있었다. 교수님들이 어떤 쪽으로 갈거냐고 물어볼 때면, "서울타워가 창문에서 보이는 직장"이라고 대답했다. 학교로 갈건지 연구소로 갈건지 미국으로 포닥을 나갈건지 물어봤을 교수님들은 혀를 찼다. 십수년을 가르치면 철이 들줄 알았던 제자가 아직도 저러고 있으니 그럴만도 했다. 하지만 난 '그건 다 교수님들이 서울에서 테뉴어를 받고 살고 있으니 하는 등따신 소리'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또 서울생활을 다시 쟁취해냈다. 모 정보부처 산하 기관에 직장을 잡았다. 의자를 돌려 창문을 향하면 저 멀리에는 한강 건너 서울타워가 보였다. 아무리 회사 생활이 엿같고 힘들어도, 의자를 돌려 등을 기대고 있으면 서울타워가 날 위로했다. 퇴근길 9711A를 타고 집에 올 때 달리는 올림픽대로의 풍경은 정말 매일 봐도 질리지 않았다. 이스탄불을 가로지르는 보스푸르스 해협만큼 넓고 멋졌고, 파리의 센느개천보다 훨씬 운치있었으며, 한강공원의 사람들은 뉴욕 센트럴 파크 사람들보다 더 즐거워 보였다. (아참. 뉴욕은 사실 가본적이 없다.)

어쩌면 현 시점의 나의 서울에 대한 집착은 왜곡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시한부 인생을 막 선고 받은 환자가 삶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해지는 것처럼, 나의 서울 생활도 시한부를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는 이제 지방의 모혁신도시로 강제이전을 당한다. 작년 여름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며 우리 회사를 2019년 12월 26일자로 그 놈의 바보같은 혁신도시로 이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내가 의학 전공은 아니지만, 들은바로는 암세포라는게 따로 있는게 아니라고 한다. 몸에 있던 건강했던 세포가 이상하게 불필요하게 너무 크게 너무 많이 증식되어 버리는게 암세포라고 한다. 나의 서울 세포도 그렇다. 서울 세포는 분명 나의 의지와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좋은 세포였다. 나의 서울 세포는 내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위해 도전하는 자세를 만들어줬다. 그리고 그 세포의 명령에 따라 많은 것들을 일구어 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서울세포는 나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 회사에 출근하는 길이 곧 그 멍청한 혁신도시(굳이 그 시골 이름을 밝히진 않겠다. )로 달려가는 길 처럼 느껴지고, 출근해서 치는 자판 하나하나가 마치 그 곳으로 달려가기 위한 준비같다. 프랜차이즈 아닌 식당과 카페를 좋아했던 나는 이제 그 혁신도시에 스타벅스나 투썸이 생긴다는 소식에 귀가 쫑긋해진다.

어릴때 나는 서울의 수많은 빌딩들을 보면서 '이렇게 건물들이 많은데, 크면 내 건물을 하나 가질 수 없겠냐'고 큰 꿈을 꿨었다. 20대 말에는 "이렇게 아파트가 서울에 많은데 내 아파트 하나 마련 못하겠냐"고 큰 꿈을 꿨었다. 그리고 지금 꿈은 단지 하나. "저 수 많은 빌딩 하나도 필요없으니, 그 수많은 빌딩 하나 안에 있을 수많은 책상 중 하나만 갖고 싶다"는 것이다.

내가 살면서 뭐 그리 큰 잘못을 했나. 나는 그냥 서울 살기 위해 열심히 산 것 밖에 없다.

아 씨발.


#life
park
April 13, 2019, 11:11 p.m.

생각보다 안 나쁠지도 모르지

Leave a Comment: